[일자리 공동체 희망을 쏜다-(2부) 사회적 기업을 키우자] ① 장애인 직원 2명을 통해

“편견 없는 일터… 신체 장애는 능력으로 이겨내요”
한국 기업들의 사회적 공헌 활동이 물고기를 나눠주기보다는 물고기를 잡을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대표적인 활동이 사회적 기업 설립이다. 사회적 기업은 사회적 취약 계층을 위한 일자리 창출을 목적으로 한다. 물론 이윤 창출도 결코 소홀히 하지 않는다. 국민일보는 성공적인 사회적 기업 8곳을 차례로 소개한다.
사회적 기업이 해외에서 발전하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중반이지만 국내에서는 2007년 ‘사회적 기업 육성법’이 제정된 뒤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94년 삼성그룹이 234억원을 출자해 설립된 무궁화전자는 국내 사회적 기업의 원조라 할 수 있다. 경기도 수원에 위치한 무궁화전자의 전체 직원은 165명이다. 이 중 72.7%인 120명이 장애사원이다. 14일 무궁화전자와 동고동락해 온 2명의 장애인 직원을 통해 이 회사를 조명해 본다.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없어서 좋아요”
이윤섭(41) 대리는 회사에서 컴퓨터에 관한 한 거의 모든 일을 처리하는 ‘만능맨’이다. 회사를 찾았을 때 공장 한쪽의 컴퓨터실에서 신제품 선풍기의 색보정 작업을 하고 있었다. 이 대리의 주 업무는 전산과 서버, 사내 네트워크 관리. 이 대리는 “회사 지원으로 1년 정도 학원을 다니며 포토숍과 홈페이지 작성 등을 배웠다”며 “회사 지원으로 배웠으니 배운 것을 회사를 위해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무궁화전자의 홈페이지도 이 대리의 손을 거쳐 완성됐다.
이 대리는 하반신을 거의 쓸 수 없는 1급 지체장애인이다. 84년 12월 중학교 1학년 때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수술 중 척수를 다쳤다. 그는 “죽고 싶다는 생각밖에 없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후 2년 가까이 병원 신세를 지다 퇴원한 이 대리는 87년 다시 특수학교인 주몽학교의 중1 과정으로 들어갔다. 93년 졸업 후 다시 지방의 한 직업훈련학교에 들어가 2년 동안 컴퓨터 프로그래밍 등을 배웠다.
95년 3월 무궁화전자에 입사하기 전 다른 기업에 응시도 했다. 모 은행에서 전산직 사원을 고용한다고 해서 원서를 넣었지만 서류도 통과 못했다. 은행 쪽에서 내세운 이유는 장애인이라 이동 범위가 제한된다는 것이었다. 이 대리는 “손과 머리만 갖고도 할 수 있는 일이 바로 컴퓨터와 관련된 일이라는 생각에 컴퓨터를 배웠다”면서 “움직임이 자유롭지 못하다는 이유로 퇴짜를 맞았을 때는 세상에 대한 원망이 컸었다”고 말했다.
다행인지 우연히 무궁화전자의 사원 모집 공고가 이 대리 눈에 들어왔다. 결과는 합격. 이 대리는 “무궁화는 내 전부나 마찬가지다. 무궁화가 있어서 이만큼 사회의 일원으로 생활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무궁화전자에는 편견이란 게 없어서 좋아요. 비장애인이나 장애인 모두 똑같아요. 신체가 아니라 그 사람의 능력을 갖고 판단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무궁화전자는 내 회사라고 생각하고 생활할 수 있었어요.”
이 대리의 꿈은 컴퓨터와 관련된 개인사업을 하는 것이다. 물론 무궁화전자에서 정년까지 마치고 말이다. 2년 전 경기도 화성시 동탄 신도시에 아파트를 분양받아 내 집도 마련했고, 역시 지체장애 1급으로 현재 사내 AS센터에서 일하고 있는 이수진씨와 10년 연애 끝에 내년 결혼을 앞두고 있다.
“우리 회사 같은 곳이 늘어나고 있는 모습에 자부심이 생겨요”
박익수(44)씨는 무궁화전자의 장애인 공채 1기다. 94년 9월 5일 32명과 함께 무궁화전자에 입사해 17년째 일하고 있다. 무궁화전자의 주력 제품인 소형 청소기 조립라인에 근무한다.
박씨는 기숙사 생활 7년 만인 2001년 내 집을 장만했다. 박씨는 “직원 대부분 기숙사 생활을 하는데 맘만 먹으면 다른 사람에 비해 저축을 많이 할 수 있다”면서 “여기서는 보통 8년 정도 기숙사 생활을 하면 집을 사서 나간다”고 말했다.
박씨는 지체장애 2급으로 세 살 때 소아마비로 장애를 갖게 됐다. 고향 충북 청원에서 인문계 고등학교까지 마쳤다. 당시 다니던 고등학교에서 장애를 가진 사람은 박씨 혼자였다. 박씨는 “이겨내야 한다”는 말을 되뇌며 고등학교를 마쳤다. 고교 졸업 후 청주의 한 한방병원에서 물품관리 업무를 맡아 1년6개월 정도 근무했다. 하지만 날벼락 같은 일이 벌어졌다. 당시 개인병원이었던 곳이 대학병원에 인수되면서 직장에서 쫓겨나게 된 것이다. 박씨는 “장애인으로 마땅한 일자리를 찾기 힘들다고 생각해 공무원 공부도 시작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면서 “좌절하던 시기에 무궁화전자 모집 공고를 보고 지원해 합격했다”고 말했다.
젊음을 무궁화전자에서 보낸 박씨는 “입사 당시만 해도 장애인에게 열려 있는 회사가 거의 없었는데 무궁화전자 같은 회사가 늘어나고 있는 모습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고 했다. 장애인 복지에 관심이 많다는 그는 “장애인은 이동권이 박탈돼 자립생활을 할 수 있는 기반이 미흡하다”며 “생활의 안정을 가져다 줄 수 있는 기회를 사회에서 더 만들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씨는 오전 8시20분 출근해 오후 5시30분까지 일한다. 저녁 시간은 미래를 위해 투자했고 직업상담사 2급 자격증과 장애인직업생활상담원 자격증이 결과물이다. 지금도 직업상담사 1급에 도전하기 위해 공부를 계속하고 있다. 보통 장애인이 많이 고용된 곳에서는 의사소통 등에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박씨는 “장애인직업생활상담원 자격증을 딴 뒤에는 공장에서 크고 작은 일을 해결해주고 개인적인 상담을 해오는 직원들도 많아 보람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박씨는 5년 전 회사에서 왜소증으로 지체장애 4급인 부인을 만나 결혼했다. 지난 5월 부인은 회사를 나와 집 근처 콜센터에서 근무를 시작했다. 박씨의 꿈은 소박했다. “앞으로 장애인들이 맘 놓고 일할 수 있는 일자리가 많이 만들어졌으면 좋겠어요. 개인적으로는 건강이 지금 이대로 유지됐으면 좋겠고요. 늙어서도 지금처럼 제 손으로 계속 운전을 할 수 있을 정도로요.”
수원=맹경환 기자 khmaeng@kmib.co.kr